삶이 장마 같을 때가 있다.
한랭전선과 온난전선 사이에 갇혀 속수무책으로
비를 흠뻑 맞고 있는 것 같은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다.
장마는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만나 정체전선을 만들며
지루하게 비를 뿌리는 시기라고 배웠던 것을 그는 기억한다.
줄기차게 비가 내려 제법 선선해진 날씨, 소매가 긴 셔츠를 입고 나선 그는
문득 요즘 날씨가 꼭 지금 자신의 상황 같다고 생각한다.
엉킨 실타래처럼 도무지 풀리지 않고 꼬이기만 하는 삶,
모두에게 나눠주던 사탕이 자기 앞에서 다 떨어졌을 때의 기분,
넘어진 적이 없는데도 무릎이 까진 것 같은 느낌,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만나 지루하게 비를 뿌려대는 장마에
속수무책으로 흠뻑 비를 맞고 선 느낌,
냉정한 인생과 불편한 희망이 정체전선을 이루면서
그의 삶에 흠뻑 비를 뿌리고 있다는 느낌.
언젠가는 장마가 끝나듯 언젠가는 이 쓸쓸한 시기도 끝날 것이다.
그렇다. 장마가 끝나면 삶의 기류는
어느 쪽으로든 움직이며 흠뻑 젖은 그의 인생을 말릴 것이다.
음이온 팡팡 나오는 따뜻한 드라이어 바람이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듯이..
김미라《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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