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한 신에서 다음 신으로 이어졌고
한 주제에서 다음 주제로 넘어갔습니다.
내 삶은 살아 있는 삶이 아니라 꾸며진 각본이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허상, 내 삶의 헛된 동력인 그 허상을 놓아버리고 나니,
끊는 게 아니고 그냥 놓아버리고 나니 무대가 사라졌습니다.
무대가 사라지니 의상도 역할도 필요가 없어져 버렸지요.
나는 무대를 걸어 나와서 거리로 나가고 싶어졌습니다.
숲과 나무들과 하늘을 보고
각본에도 없는 난데없는 바람을 그저 느끼고 싶어졌습니다.
두서없는 말을 하고 음정 틀린 노래를 부르며
이도 닦지 않고 세수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 않고 싶어진 것입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친구를 만나 향기로운 음식과 술을 마시고
즐기며 볕 좋은 날에는 낮잠을 자고 깨달을 게 있으면 깨달아 노트에 적어놓고
풀리지 않는 문제는 내 마음의 선반에 얹어놓으며 그냥 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살겠다고 다시는 결심하고 싶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J, 저는 달력의 일정을 하나씩 지울 수 있을 때까지 지웠습니다.
공지영『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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