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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Therapy/기억의 편린

스물 네시간의 침묵...

by Rain.. 2015. 12. 15.

 

 

 

 

 

 

 

 

이 세상은 공허함과 결탁했고...

길 잃은 영혼들은 아름다움에 눈물 지으며...

무의미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러니 한 잔의 차를 마시자...
침묵이 형성되고..

바깥에서 바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차를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시간은 승화된다...

 

 

뮈리엘 바르베리《고슴도치의 우아함》중에서...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싹싹 지운다.

생각이 떠오르는 족족 머리를 마구마구 흔들어 내 쫒는다.

다음엔 심장을 들여다 본다 오래 응시할 필요는 없다.

상처라거나 미미한 통증,어자러움 같은 것이 아른거리면 꾹 눌러 버린다.

모두다 욕심이고 욕망이다..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것이고...

세상은 어차피 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다.

 

라디오를 켠다 무슨 음악이 나오든 무슨 소리를 하든 그냥 듣는다.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둔다 '지금은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로 걱정을 끼치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하느라 벨소리를 못 들었나 보다'가 낫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제일 좋아하는 바디로션을 온몸에 듬뿍 바른다.

헐렁한 옷을 입는다. 커피 한잔을 만든다.

원두를 천천히 갈고 우유에 거품을 잔뜩 내서 커다란 컵가득 담는다.

책상에 올려두고 잊어 버린다. 침대에 누워 뒹군다.

발치에 쌓여있는 책들중에서 한권을 잡는다.

엎어져서 잔다. 초인종 소리, 무시한다. 어차피 올 사람도 없다.

 

잠에서 깨어나면 꿈의 여운을 맛본다.

요리를 한다. 잘 익은 김치를 꺼내고 나물을 무친다.

한 솥가득 국을 끓인다. 갓 지은 밥에서 김이 오르는 것을 감상한다.

하루종일 만화만 틀어주는 케이블방송에 체널을 맞춘다.

케로로나 코난을 멍하니 보면서 밥을 먹는다.

사과를 깍는다. 기분이 내키면 토끼귀도 만든다.

스케치북을 펴고 6B 연필과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린다.

손으로 마음껏 문지른다.알록달록해진 손가락을 빡빡 문질러 씻는다.

색색으로 물든 손톱을 깍는다.

 

창가에 서서 해 지는 것을 본다.

식은 커피를 마신다. 읽다 만 책을 다시 펴 든다.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을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오래된 필름 사진들을 만지작 거린다.

기억이나 추억이 밀려들면 잠시 그대로 놓아둔다.

어차피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밤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무음을 듣는다.

색이 바랜 사과를 한입 깨문다.

 

아무 소리도 내지마. 숨만 쉬어...

머리에게,가슴에게,두 손에게,,,

갈망에게,그리움 에게,눈물에게,시간에 다짐한다.

나는 더 많이 침묵해야 한다. 스물네시간 짧다.

 

물 네시간의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