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 Therapy/쓸쓸한 조도314 익숙함의 함정 낯선 것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낯섦을 느끼는 건 익숙함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낯선 것 가운데에 들어가면 간혹 내가 더 또렷이 보인다. 내 삶의 틀 속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것들의 더러움과 하찮음을 보게 되고 무심했던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도 깨친다. 아득히 잊고 있었던 오래전 일이 기억나기도 한다. 2019. 12. 13. 추억이라는 이름 생각해보니 그간 바보처럼 추억이라 믿고 껴안고 살았던 게 너무 많았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간직해오던 것들.. 몇년간 입지 않은 옷, 몇년간 들춰보지 않은 물건들.. 앞으로도 사용할 일이 한번 있을까 말까한 물건들.. 머리위에 이고 살던 유통기한 지난 추억들.. 모조리 갖다 버려야겠다. 2019. 12. 10. 예민함과 연약함 십일월의 절반이 지나갔다. 햇살이 야위고 바람에 유리창에 흔들리는 이 계절을 나는 좋아한다. 마치 겹겹의 옷을 다 벗어버린 것 같은, 누군가를 만나면 그만 물려 죽을것만 같은 예민함과 연약함 속에서 나 자신이 선명하게 깨어있기 때문이다. 2019. 12. 8. 시간과 존재 시간은 바다와 같고 허공과 같고 한 점에 계속해서 박히는 못과 같다. 나는 이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가는 시간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시간의 등뒤로 손수건놀이하듯 몰래 지나가기를 즐긴다. 시간과 존재가 서로에게 그렇게 빠듯하게 굴지 않아도 좋다는 건... 나이 든 뒤의 유쾌한 깨달음이다. 걱정 말고 너도 가고 나도 가면 되는 것이다. 가능하면 흔적 같은 건 남기지 말고... 2019. 12. 1. 계절 사이 11월의 끝자락이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공기에 싸늘함과 쓸쓸함이 가득하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시기인 11월이 사라질라치면, 현관문을 열고 배웅이라고 나가야 할 것만 같다. 11월 측은하다. 너무 빨리 달아난다.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어떤 이들은 11월을 가리켜 '계절의 환승역'이라고 말한다. 일리가 있다. 이 시기를 통과할 즈음 우린 가을이라는 열차에서 내릴 채비를 한다. 어떤 이들은 계절과 계절 사이를 그냥 건너가는게 아쉬워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의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계절의 흐름과 함께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한다고 할까... 2019. 11. 26. 나이듬의 단상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간의 풍파를 견디는 일이다. 스스로 터득한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을 견디는 일이다. 삶이라는 비바람 속에서 한때 내 일부였던 것들이.. 몸에서 떨어져나와 수분을 잃고.. 가루가 돼 흩날리는 광경을 덤덤하게 바라보면서, 우린 그렇게 나이라는 것을 먹는다. 그리고 잊지않고 꼭 확인시키고 각인 시킨다. 오늘처럼............ 2019. 11. 12. 길 없는 길 길 없는 길 위에서 마음 적당히 비뚤어지게 만드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싶은 날이 있다.. 가슴에 푸른 멍이 들고.. 목젖까지 부어 숨이 차올랐던 그런 날엔... 술잔이 투박한 그 집 붉은 의자가 좋다.. 길 없는 길 위에서 눈물 섞인 술을 마시고 싶은 날이 있다.. 자정이 지나도록 입 안에 혀는 지칠 줄 모르고 언어가 몸살을 앓는 그런 날엔.. 술잔이 투박한 그 집 붉은 의자에 온통 내려놓고 싶다... 가끔씩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날, 그런 날엔 젖은 나를 뽀송뽀송 말리거나.. 너무 말라 부서질 것 같은 몸, 축축하게 적시거나... 2019. 11. 7. 추억의 다른 이름 잘 지내느냐는 한때 소중했던 사람의 문자를 느닷없이 받으면 마음에서 서늘한 바람이 이는 것만 같다. 잠시 그 바람 속으로 모든 게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사람이 보내온 짧은 문자와 비슷한 글자수로 답신을 보냈다. 그러고는 그 사람에게 보내지 못한 나머지 메시지는 속으로 삼켜버렸다. 그래도 고마웠다고... 덕분에 그 힘든 시간 버틸 수 있었다고....' 2019. 11. 4. 상실의 시간들 저마다 견디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조건에 공감한다. 호흡 자체가, 시간 자체가, 하루와 한 달 그 자체가, 무의식적인 우울의 원인. 중요한 기회를 잃어가는 상실의 시간들. 매일 현재를 물어 뜯는. 삶에 낙심한 사람은 매일 매시간 가파르게 늙는다. 몸과 머리가 무거워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 있는 기분이다. 내게는 행복과 불행이 구별되지 않는다. 방법은 없었다. 더 조심스럽게 사는 것 뿐.... 2019. 10. 31. 이면의 이면 늘 그랬다. 행복과 기쁨은 인생의 절반만 가르쳐줬다. 인생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고르게 알려준 스승은 언제나 슬픔과 좌절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도달할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마다, '과연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이 조직에서 나를 지켜내야 하는가?' 따위의, 삶에 그나마 보탬이 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 같다. 2019. 10. 27. 기억을 걷다 우리가 모르고 스쳐 지나갔거나 아니면 소중히 간직했으나 시간앞에 저절로 잊혀져가는 것들이 어쩌면 소중했던 순간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화려하지만 않지만 삶의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이 소중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많은 시간동안 스쳐지나가면서 어쩌면 제목처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지나날 우리를 행복해준 것들일 수도 있다.. 2019. 10. 26. 가을앓이 허허로웠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나는 늘 허허로웠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 했었는데... 이맘때 쯤이면 왜 유독 내 마음은, 한자리에 못있는 것인지... 그랬다.. 바람은 길거리에만 부는 게 아니었다... ........... 2019. 10. 18.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27 다음